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기억의 밀도/] 김미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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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밀도
김미정
당신의 가능을 이용하세요
적당한 온도의 기억을 침대에 눕히고요
밤새 펼쳐진 페이지와 젖은 숨소리로 이어진 그 길의 이야기도 함께요 있다가 없어진 그 메모지와 영화티켓 찾지 마세요 버려진 의자들도요
자 그럼 침대가 데워졌나요?
차갑거나 뜨거웠던 금요일은 잊고
오후 3시의 그림자도 잘라버리고요
환하다 눈감은 터널의 빛과 열리지 않는 목록도 과감히 찢어버리세요 지난봄 정정하던 어머니도 벚꽃 피던 하얀 밤도 갑자기 사라졌잖아요
계절을 건너는 투명한 계단이 피어나요 그래요, 귓속말로 속삭이는 이 순간도 곧 사라지겠죠
기억나지 않은 꽃잎들도 오늘이 차오를 때
불멸을 앓는 침대에 누워요
비로소 당신의 얼굴과 시간의 실루엣을
불가능이라고 부를 거예요
ㅡ 『시와 사상』(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