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2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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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눈
  
  박성현


  당신을 보내고 온 날 온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구릿빛 풍경이 고드름 녹듯 뚝뚝 떨어졌습니다 발자국이 어지러웠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발자국을 떼어내며 나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태반이 멀리 가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오월에 큰 눈이 내렸다는 말은 신문을 뒤져봐도 깜깜했지만 하루에도 몇 시간씩 눈을 맞았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구릿빛 풍경이 당신의 기척을 들었습니다 눈을 푹푹 밟으며 부산했습니다 나는 바싹 마른 국수처럼 비좁아져서는 봄눈 속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발자국을 떼어냈습니다



ㅡ『공정한시인의사회』(2021,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