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벚꽃 비늘 /권영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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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비늘

 

권영부

 

 

벚나무에는 도미 떼가 숨어 산다

그러지 않고서야

봄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하얀 비늘들이 저렇게 통통, 튈 이유가 없다

그렇다

평생을 그리워한 하늘로 떠나기 위해

살그머니 바다를 도망쳐 나온 도미 떼들이

마침 제 빛깔을 닮은 벚꽃 속에 숨어서

잠시 머물다 가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눈치 빠른 봄볕이 봄바람에게 고자질하는 통에

하얀 비늘이 박박, 긁히는 능욕을 당했고

헐벗은 도미 떼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도미 떼의 도망질이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벚나무 가지 사이마다

도미 떼들이 진을 치고 있다

따스한 봄날이 들이닥치면

다시 하얀 비늘 옷을 챙겨 입고

분수처럼 단박에 하늘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다

 

 

 

시집『달개비의 전세 (문학의전당,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