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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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꽃

 

김청수

 

 

영하의 한파 속에 눈길이 마주쳤을 때

붉디붉은 숨소리를 꽃망울에 감추고 떨고 있었다

 

백정의 폭력 같은 한파 寒波가 닥치기 며칠 전

화단의 양지쪽, 철없이 앉아 꽃을 피워 놓고 몸을 녹이던

명자나무를 나는 명자 누나라 부른다

 

세상 물정 모르는

긴 머리 검은 눈동자 스무 살 청춘을 백정에게 바치고

산골에서 소읍으로 시집 간 명자 누나!

 

짐승 같은 백정의 손아귀에서

평생 속울음 홀로 삼키며

식당 일하다 환갑이 지난

불한당 같은 그놈에게 발목이 묶여

손등에 물이 마를 날 없는......

 

칼날 같은 한파 앞에 명자나무 가시 사이로

철없이 핀 명자 누나!

 

 

 

⸺계간『詩하늘 101』(202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