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딱따구리 소리는 날 멈춰 세우고 /손진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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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소리는 날 멈춰 세우고 

 

손진은

 

 

겨울 염불암 가는 길

솔바람 소리 속 청딱따구리가 걸음 멈춰 세운다

긴 부리의 저 새는 가시 달린 혀로 수피 속 미물을 낚아챈다 한다

연한 목질에 숨어 첫숨 몰아쉬는 딱정벌레

장수하늘소 유충 떨리는 심장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딱따구리가 벌레를 쪼고 있다고만 생각지 않는다

타탁 탁탁탁 타타타타

타자기보다 경쾌한 울림 공중에 흩뿌릴 때마다

나뭇결 어둔 속은 조금씩 파헤쳐져

보드랍게 부스러기들 떨어지고

바람이 고루 숲에 뿌려주는 그 향기에

벌레들 또 그걸 먹으려 달려들 것이다

으늑한 적막 부푸는 골짝에

이내 사라져버리는 말의 장단 끝없이 새기는

불붙는 부리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저 눈빛 선한 새는 날 멈춰 세우고

나무의 내면까지 기어코 들어가려는가 보네

따악딱딱딱에서 출발한 소리가 터엉텅텅텅이 될 때까지

나무의 깊이를 빛의 광휘로 바꿀 때까지

마치 나무 하나가 산 전체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다는 듯

어둠 내리는 시간인 줄도 모르고 지켜보는

내 발등이 시려온다는 것쯤 아예 안중에 없다는 듯

 

 

 

『문학저널』(2021,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