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정지한 시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각주 3 /정재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4. 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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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한 시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각주 3

 

정재학

 

 

나만 보았던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모습,

가쁜 숨으로 흔들리시며 인공호흡기를 끼우던 그때

투명한 유리막 사이로 내가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들었을 때

아버지도 천천히 함께 주먹을 들었다.

사람에게 슬픔저금통이 있다면

그때 꽉 차버린 것 같다.

묻어버리고 찾고 싶지 않은 슬픔저금통.

이년이 되었지만

그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다.

요즘은 멀쩡하게 가던 시계를 손목에 차면 죽어버린다.

이상해서 아내 손목에 채워보니 잘 간다.

아버지, 이제 타르 같은 감정들을 버리려고 합니다.

불친절했던 그 마지막 의사도

항암제 맞고 누워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자기 투정만 하던 그 인간도

이제 제 슬픔저금통에서 쏟아버리려고 합니다.

가끔은 내가 왜 아버지를 선택해서 태어났을까,

아버지는 왜 저를 선택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와의 많은 엇갈림들이 나의 정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시인으로 키우신 것 알고 있습니다.

시 몇 편 쓰고자 저는 아버지를 선택했고요.

이제는 저나 아버지나 아무 엇갈림 없이도 시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지금처럼 시계를 죽이는 일도 없을 겁니다.

 

 

 

『창작과비평(2020,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