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워낭소리 —지문리의 봄 /권혁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4. 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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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지문리의 봄
권혁찬
그리고 5월, 다시 들판에 서 있다
수입소와 광우병 사이에서 네 발 가진 모든 먹구름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더 식음을 전폐했고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은 모두가 적막 속에서 기울어 갔다
봄이 오고 마을은 또다시 잠에서 깨어났지만
동네 미루나무와 낡고 위태로운 한우 우사는 두문불출 중이고
오래전 기억상실증을 따라간 후 돌아오지 않는 최 씨와
들판에 뿌리박힌 것들은 모두 몇 개의 이정표가 되었을 뿐
더는 이곳의 아침을 몇 줌 태양처럼 깨워주지는 못한다.
저녁이면 싸리문 안쪽으로 네 발로 귀가하던 푸른 워낭소리,
그랬다.
마을은 한때, 보습의 날들이 주인이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수선해 주던 농기구들과
그들의 덜컹거리는 꿈들을 운반해 주던 고샅길들과
아침이면 부스럭, 건너오던 울타리 저쪽의 뜨끈한 안부가 있었다.
한동안 뜸했던 문안을 챙겨 도시 저쪽에서 고향마을로 들어서는데,
뒷산 아카시아가 밥물처럼 허옇게 끓고 있다
인기척은 모두 짐을 싼 앙상한 축사들
오래전, 내 유년의 머리맡을 부풀리던 농경의 울음들은
모두 누가 치워 버렸을까
⸺시집『바람의 길』(시산맥,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