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이브의 미토콘드리아 /김추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4. 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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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미토콘드리아
김추인
‘악마의 문’*이란 동굴이 있었네
문 안은 뼈의 여자들
내 어머니의 오래된 어미들이네
만년, 어미의 미토콘드리아를 살뜰히도 받아든 나는
늘 여기에서 저기로 길을 떠났네
어머니의 머나먼 할미들이 원적지 아프리카를 떠나 기나긴 길을 끌고 북으로 동으로 발자국을 찍었네 딸이 딸을 업고 동토를 떠돌다 뉘는 얼어 죽고 뉘는 살아남아 짐승이나 짐승 같은 이에 맞서 돌망치 소리 텅- 텅 ‘악마의 문’을 파냈을 거네
내일은 날마다 내일로 흘렀으므로
‘악마의 문’을 나선 딸들 온유와 온기를 찾아 앵두꽃 피는 남으로 길을 꺾었으리 길 중에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 걸어서 해 뜨는 반도 땅에 말뚝을 박을 동안 천년 해가 네 번을 돌아오고도 몇백 성상星霜을 사무치게 호명하는 이 있었던지 내 어머니의 딸이 지상에 불려 나왔네 생뚱맞은 딸이 구름이나 좇는 바람의 딸이
나, 사막을 떠도는 에우리알레**
신기루를 찾아
구름길을 꿈꾸는 모래의 족속이네
훗날에도 먼 훗날에도
나, 떠도는 귀신
어미의 미토콘드리아를 지고
‘가지 않은 길’을 갈 나와 딸과 딸의 딸들
*악마의 문 : 블라디보스토크 동북쪽, 옛 고구려 땅에 있는 동굴.
**에우리알레 : 멀리 유랑하는 신화 속 여인
―월간『현대시』(2020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