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감상해 보자

하피첩 / 이유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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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첩

 

이유채

 

 

한지 대신 펼쳐놓은 노을빛 비단 치마

수척한 바람 한 줄 댓돌 위에 서성이고

어젯밤 서리까마귀 멈칫멈칫 길을 묻다

 

귓바퀴 밖 매암 도는 벌레 소리 잦아들고

새벽녘 미명 헐고 씻어내는 흐린 눈빛

소맷단 떨리는 손이 옷깃 여며 먹을 간다

 

무슨 말 남기려고 붓끝 곧추 세웠는가

아들에게 실어 보낼 가시 울장 빈 하늘을

몇 굽이 훌훌 풀어낸 호연지기 풀의 문장

 

벼리고 벼린 한 획 한 획 직필의 혈서인가

들끓는 지아비의 그 간곡한 속엣말이

뼈마디 곧은 결기로 야청 하늘 풀고 있다

 

 

* 정약용이 강진 귀양살이 때 아내가 보내온 비단 치마폭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적은 책.

 

 

 

ㅡ시조집 『나뭇잎 잠』(고요아침,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