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닭은 알을 낳을 때 /배수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11. 09:07
728x90

닭은 알을 낳을 때

 

배수연

 

 

시원할까 아플까

쥐는 그런 것이 궁금했다

쥐는 도시에 중독되었다

저놈의 노인들도 평상도 없는 양로원에 중독되었다

효모빵과 실크로 된 샤워가운, 그런 건 섬에도 있다

꿈에서 쥐는 공모전을 거절했다

대단한 일이다

도시에선 끝없이 공모전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용기를 자랑하기 위한 포트럭 파티

흔한 일이다 하나같이 닮은 쥐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하나같이 쓸쓸하다는 것 따라서

어떤 쥐도 한숨을 쉬지도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쥐들은 실컷 먹는다 석회 껍질을 잔디 위로 던진다

잔디는 고독을 모르겠지

잔디는 거울을 보며 잔디는 돌일 수 없다고 외치지 않겠지

잔디는 많을수록 좋다 잔디는 똑같을수록 좋다

잔디는 완전히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쥐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언젠가 하나의 좁은 시야를 갖기 위해

눈알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도려낼 것이다

봐, 이것이 압생트다 압생트!

어느 쥐가 명화 속 정물을 뜯어왔다

쥐들은 압생트를 감상한다 코를 벌름거리며 아,

향쑥, 살구씨, 회향, 아니스의 향기… 이런 건 이제 여기 없지

화가와 압생트는 옛 도시와 같이 죽어버렸다 츱츱츱

쥐들은 꽁꽁 언 버터 같은 손바닥을 비비고 활주로처럼 수염을 뻗는다

새벽에 온 택배 박스엔 사무용지만큼 하얀 달걀이 있다

빨대를 꽂아 마시며

닭이 이걸 낳았다는 게 정말인가 닭고기가 되기도 바쁠 텐데

도시는 시원하고 도시는 아프고 도시는 간지럽고

도시는 죽는다 도시는 태어난다

타로점 공짜로 보고 싶으면 손!

모든 쥐가 손을 들었다

쥐는 그런 것이 궁금했다

 

 

 

 

『시와 반시(2021,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