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전장석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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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전장석

 

 

고갯마루를 마수걸이한 마을버스가

몇 사람과 접점하고는 내리막길로 이항한다

간판이 분필로 쓰인 책방은 방금

새로운 이론을 설명하려던 중이다

 

​저녁 산책의 중력파가 만리동까지 미치면

거기, 작동이 멈춘 낡은 탁자 위의 시간들

수공이 되어 나를 내부 수리한다

 

무중력의 이 도시를 용감하게 횡행하던

한 권의 시집, 단 한 줄의 문장 속엔

궤도를 이탈한 소우주가 지구본처럼 떠돌고

평생 떨어진 사과를 줍다 허리 휜 내 이력이

통증이 가시지 않은 호롱불로 밤새 매달려 있다

 

막대그래프 같은 아파트와 낮은 곡선의 지붕들

그 아찔한 간극에서 자주 멀미하던 바람이

서점 어딘가에 불편한 기록으로 꽂혀 있다는데

언제쯤 그것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불구의 시간들이 버릇처럼 그리움으로 발화되면

나는 또 책갈피 속 언덕 마을을 찾아갈 것이지만

 

식어가는 계절의 밧줄을 놓지 않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태양의 인력引力을 증명하듯 무서운 발톱을

금 간 담벼락에 양각한 만리동

담력이 약한 짐승 한 마리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언젠가 굴레방다리 아래 가을비로 뚝뚝 떨어져

변곡점이 된 기억 하나

 

만유인력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시집『서울, 딜큐사』(상상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