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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초대 /신형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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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초대
신형건
혼자 집에 오는길, 달팽이를 만났어.
산책로를 느릿느릿 가로지르는 중이길래
쪼그려 앉아 "어디 가니?' 물었지. 달팽이는
"생일 파티에 가." 대답하더군. 그래, 지금쯤
민준이 생일 파티는 한창일 텐데...다들
신나게 놀고 있을 텐데... "그럼, 네 친구도
오늘 생일이니?" 또 물었더니, 달팽이는
뿔 더듬이를 살래살래 흔들더군.
"아니, 네 생일 파티에 가는 중이야."
뭐라고! 내 생일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
두 달도 더 남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 생일이 며칠인지 아니?" 물었더니,
이번엔 뿔 더듬이를 까딱이더군.
"그러엄. 실은 내가 걸음이 너무 느려서
늦지 않으려고 미리 출발한 거야."
내가 절 언제 초대했다고... 픽 웃음이 나더니
갑자기 찔끔 눈물이 나오지 뭐야.
달개비 잎 하나를 똑 따서 달팽이에게
내밀었어. "그래, 이거 내 생일 초대장이야.
7월 23일 오후 네 시까지, 꼭 와."
―『동시먹는 달팽이』(2021,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