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야성은 점선으로 빙그르르 /안경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6. 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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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은 점선으로 빙그르르

 

안경원

 

 

어미 사자가 어린 얼룩말 잡아 자기 새끼를 먹이는

정글 세계, 볼 때마다 으흑

깔끔하게 포장해 파는 고기 구워

작게 잘라 밥상 차리다

왜 사자가 보이는지

닭백숙 해서 가슴살 발려낼 때면

생각은 더 치열해진다

사자는 강한 이빨로

나는 집게와 가위로

도축장은 멀기만 하니

야성 대 문명이라면 누가 동의할까?

모성이 야성과 가깝다면 동의할까?

어릴 적엔 산 닭을 집에서 잡았는데

잔인한 어른들, 난 못할 거라 했지

피할 수 없게 된 도시의 삶에서

바람 센 날 물결처럼 간혹 등을 보이는

야성은 숨어서 바짝 붙어 있는가

 

TV 화면에 알래스카 바다가 넘실대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 떼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튀어 오른다

대략 4년 걸린다는데

저물녘 퇴근 인파 가득한 지하철 안에

점선 빙그르르 달리곤 한다

 

북극해 가까이 떠도는 유빙을 헤치며

물개 사냥하는 원주민의 총성이

광활한 푸름을 꿰뚫을 때

나는 왜 가슴이 뚫리는 저격을 느끼는가

벗겨진 북극곰 가죽이 찬 바람에 펄럭이는데

연어 잡으러 물속에 뛰어드는 북극곰 모자

야성이 생존을 활짝 열어젖힌다

 

 

 

―『시로 여는 세상』(2021.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