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각을 끌어안다 /김금용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6. 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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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을 끌어안다

 

김금용

 

 

가파른 산정으로 오를수록

너럭바위가 팔 뻗쳐 길을 막는다

제 안에 각을 부수고

잡아당긴다 끌어안는다

말 건넨 적 없고 표정도 없지만

긴 팔이 쑥 나온다

길 잃은 이도 불러들인다

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카드 영수증

연락 끊긴 전화번호와 전하지 못한 쪽지

비집고 뛰쳐나갈 용기가 없어

귀갓길에 운전대를 잡고 내지르는 비명

다 털어버리라고 잡아당긴다

너럭바위가 각진 모서리를 끌어안는다

빗물과 짠 눈물바람으로 닳도록 두들겨

수직과 수평 그 틈새로 링거병을 꽂는다

진달래와 얼레지꽃, 붉은병꽃 수액을 넣는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앞길이 막막해도

북악산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산마다

비집고 들어갈 뜨거운 혈을 만든다

 

각이 무너진다

봄이 둥그렇게 길을 연다

 

 

 

―시집『각을 끌어안다』(현대시학,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