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허물 /정호승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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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정호승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덜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를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문광영 시평집『문학평론가가 뽑은 이 계절의 좋은 시』(청어, 2010)
―『문학사상』(2007. 6)
―시집『포옹』(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