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24. 18:31
728x90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어두운 새벽 노쇠한 수소가 소리를 내어 운다

식구들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었으니

부리망 쓰고 걷던 들과 밭

발자국들 되새김질 하며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골목길로 끌려 나간다

 

몇 겁의 생을 건너와

나의 짚더미에 떨어질 때부터 한 가족이었으니

트럭 앞에서 할아버지 산소를 올려다보고

산울림 같은 소리를 낸다

 

축축한 눈물이 고여 있는

외양간 벽에 기대앉은 할머니

일만 죽도록 하고 인간들에게

가죽 한 벌 뼈 한 조각까지

다 내어주고 떠나가는 소에게

 

모진 인간들 세상 다 잊고 가라

미안하다 오늘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시집『사람이라서 미안하다』(도서출판 한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