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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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어두운 새벽 노쇠한 수소가 소리를 내어 운다
식구들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었으니
부리망 쓰고 걷던 들과 밭
발자국들 되새김질 하며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골목길로 끌려 나간다
몇 겁의 생을 건너와
나의 짚더미에 떨어질 때부터 한 가족이었으니
트럭 앞에서 할아버지 산소를 올려다보고
산울림 같은 소리를 낸다
축축한 눈물이 고여 있는
외양간 벽에 기대앉은 할머니
일만 죽도록 하고 인간들에게
가죽 한 벌 뼈 한 조각까지
다 내어주고 떠나가는 소에게
모진 인간들 세상 다 잊고 가라
미안하다 오늘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시집『사람이라서 미안하다』(도서출판 한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