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어쩌다, 석류 /이정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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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석류
이정원
잊히기 쉬운
잊고 싶은, 그러나 잊히지 않는
너의 눈동자를 꽂고 행성 바깥에 서 있었지
등 뒤 어둠이 농익어
새빨간 입술을 켜고
망쳐버린 꽃밭을 손질했지
손 안에, 어쩌다
붉은 유혹 페르세포네
석류를 쪼개다 피가 튀었지
물든 옷섶
글썽이는 심장
어둠이 먹여 키운 불안으로 미각의 심지를 돋우면
웅크린 감각이 덥석 되살아나
자지러지는 빨강 혹은 자주
누군가에게 건네야 하는
불땀을 옷 주름 속에 감추고
알갱이를 깨물까
한꺼번에 입 안에 넣을까
석류 먹는 법
피가 덜 튀는 방식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
왼 손과 오른 손이 엇갈려
석류가 석류인 채 흘러가는 붉은 즙의 시간
백년을,
피가 끓는 시간
―계간『리토피아』(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