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허기 충전 /손진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3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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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충전

 

손진은

 

 

수년째 성업 중인,

그 묘한 허기가 떠오를 때마다 가는

밥집이 내 일터 가까운 곳에 있다

 

‘허기 충전’이라는 간판을 내건

저 카운터의 흰머리 사내는 알고 있다는 걸까

한 끼의 식사 같은 거로는

원기가 충전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 충전된 허기가 더 검게 빛난다는 걸

 

밤새 달빛이 어루만지다 간 알 같은

부화를 기다리는

둥근 지붕의 저 식당에는

 

아닌 게 아니라

펄럭이던 검정 비닐에 구멍 뚫어

마늘을 심던 벌건 얼굴들의 담배연기와

인근 공사장 인부들 발꼬랑내 나는 군화와

막걸릴 마시다 시비가 붙어

막 씩씩거리는 짧은 머리의 롱 패딩들

 

허기의 사촌쯤인 불만과

불만의 양아들 뻘인 분노와 상처들이

연탄난로 위 주전자가 흘린 물방울처럼

따그르르, 츠잇츠잇 굴러다닌다

 

삶에 대한 계획 같은 건 아예 없는,

성실한 것이 아름답다고만 믿지 않는 눈빛의,

부시지 않는 빛을 두르고 있는,

음지식물 같은

 

저들은

먹을수록 충전되는 단단한 허기

맷집처럼 키우러 집요하게

소슬한 저녁들을 찾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시집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걷는사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