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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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김향숙

 

 

거대한 유빙 너머 눈 덮인 침엽수에도

검은 발톱이 있어요

공중을 할퀴는 우듬지에서 구름이 긁혀 나와요

 

냉장고를 열면 가끔 검은 내장이 쏟아져요

북극곰은 몇 년째 우리 집 주변 한쪽에

으르렁거리는 소리로만 남아 있어요

 

식욕이란 순백색의 앙상함,

빙하는 새끼 곰을 잡아먹어야 하는 분열을 겪고 있어요

 

오후에 펼쳐지는 먹이사슬은 엉망이에요

하늘과 맞닿은 서쪽부터

마구잡이로 피의 포획이 번지고 있어요

 

백야는 둥둥 떠다니는 고립이 아닐까요

유빙은 더 잘게 조각나고

그 틈에서 허기진 내장을 내보이죠

 

지평선이 저녁놀을 삼키고 나면

순식간에 인공위성이 별들의 포식자죠

백야를 자처하는 네온이 짧은 겨울을 사육하고 있어요

 

인간도 멸종에 던져질 때가 올 거예요

야산에 버려진 냉장고처럼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지구가 좀 더 기울어져요

 

동면에선 태양처럼 기도가 없어도

북극곰은 앞발을 꼭 모은 채 하늘을 올려다봐요

 

나는 사육만 당하고 있는 야윈 북극곰에게 휴식을 주려고

꼬리에 연결된 플러그를 뽑았어요

 

 

 

―『모던포엠』(2021.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