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붉은 사막 로케이션​ /오정국(吳廷國)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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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막 로케이션

오정국(吳廷國)

 

 

어디서 시작됐는지 종잡을 수 없다

붉은 사막 로케이션

단어들의 윤곽이 선명하다

평면의 그림에서 입체적 형상이 일어서듯

선인장처럼 타오르는 빛의 하늘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거기서 눈먼 자는 되돌아올 수 없다

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철가면을 흔들며 울부짖는 곳 ⃰

그 어디쯤 모래무덤에

내 전생(前生)의 발자국을 맡겨둔 것 같다

 

검은 가죽바지 오토바이가

일몰의 지평선을 넘어가고

밤의 야영지는 끝없다

양고기 굽는 모닥불의 그림자들

빛으로 어둠으로 얼룩진

얼굴들, 구릉 너머 모래밭에 잠겨있는데

발을 들이밀 자리가 없다

텔레비전 화면의 긴급뉴스 자막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이 문장이 거쳐 온 경로를 밝힐 수 없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오이디푸스 왕」.

 

 

 

―시집『재의 얼굴로 지나가다』(민음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