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할머니 /최진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4. 17:10
728x90
할머니
최진영
비가 송곳처럼 내리는 날
할머니는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낡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신다
-오메! 우리 둘째 아들 비맞고 일하겄네.
연기 같은 흰머리가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쉬며 일렁인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또 다시
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날이 너무 덥다고
자식들 걱정을 하시겠지
그림자 같은 폐렴에 걸려
세월 같은 기침을 연신
내뱉으시면서도 할머니는
한사코 거부하셨다
논바닥 같은 손가락을
사막 같은 입술에 대시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어잉!
―시집『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스타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