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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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최진영

 

 

비가 송곳처럼 내리는 날

할머니는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낡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신다

 

-오메! 우리 둘째 아들 비맞고 일하겄네.

 

연기 같은 흰머리가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쉬며 일렁인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또 다시

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날이 너무 덥다고

자식들 걱정을 하시겠지

 

그림자 같은 폐렴에 걸려

세월 같은 기침을 연신

내뱉으시면서도 할머니는

한사코 거부하셨다

 

논바닥 같은 손가락을

사막 같은 입술에 대시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어잉!

 

 

 

―시집『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스타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