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여전히 그 잔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하상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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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잔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하상만

 

왜 어떤 사람은 백 년을 살고

어떤 사람은 삼십 년을 못 사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함부로 살아도 다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조심해서 살아도 사고가 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먼저 데려간다는데

그런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어떤 사람은 몇 방울의 물방울에도 미끌어지는가

바다를 헤엄쳐 건넜던 사람인데도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무너진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죽음 앞에서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기도가 소용 없다

 

지은 죄도 없는데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모르는 죄가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군중의 살해자들은 왜 천년을 사는 걸까

아무런 고통도 없어 보인다

 

왜 어떤 사람은 떠나고 나서야 가슴에 남을까

일부러 찾아간 적도 없는데

 

미워한 사람인데 헤어지면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은 사랑하기라도 했을까

 

때가 되면 책들을 버리면서 밑줄 그은 책들을 주저한다

다시 읽어보면 밑줄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이가 빠진 잔을 보면서도 버리지 못할까

그 잔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차를 마시게 한다

 

 

 

―​​월간『문학사상』(202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