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좌우 연대기 /최지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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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연대기

 

  최지원 

 

     

  나사들은 늘 오른쪽을 고집했다

 

  밥상의 다리들이 삐거덕거릴 때도

  화장실 문들 손잡이가 헐거워질 때도

  밥 받아먹으려고, 뒤끝을 해결하려고

  오른쪽, 오른쪽, 옳은 쪽이라며 돌았다

  (시간을 돌리는 바늘도 같은 편이었다)

 

  구멍과 낯선 구멍이 어긋나지 않으려

  면眠과 면眠이 붉어지지 않으려

  나사들은 드라이버가 시키는 대로 정수리를 들이댔다

 

  어쩌다가

  나사의 관습에 반기 든 극좌파를 보았다

 

  몇 시간째 광화문정류장 땡볕 아래 꼼짝 않고 있던 그는

  온몸을 조이고 있던 나사가 모조리 빠져나간 뒤

  자신을 열던 손잡이마저 내팽개쳤다

 

  그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의 정수리를 폭염망치가 쨍쨍 내리박자 온몸에 뚫린 구멍으로 구멍보다 더 큰 못을, 못이 박힌 줄 모른 채 못 위에 못들을, 막혀 가는 줄 모른 채 못 위에 못들을 받았다 박힌 못들이 처음부터 그의 몸인 줄 알 때까지 받았다 그는 더는 생의 중력에 눌리지 않았다

 

  나사의 좌우를 버리니 나사는 거대한 못이 되었다

 

―시집『얼음에서 새에게로』(시산먁,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