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디스토피아 dystopia​ /강영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 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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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dystopia

강영은                      

 

 

두족류도 고통을 느낀다

오징어나 게를 삶을 때 통각 신경을 마비시켜 죽인 다음

삶아야 한다   

오징어를 삶으려는데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는다

들고 있던 오징어가 끓는 물 속으로 빠진다  

앗 뜨거!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오징어의 비명이

​냄비 속에서 요동친다

온몸이 데인 것처럼 육신 밖으로

육성이 흘러넘친다  

지옥이다

수족이 오그라들고 몸통이 찌그러든 모양이

드라마 ‘지옥’에서 보았던 지옥의 모습이다    

여긴 인간이 세계라고

하느님도 부처님도 개입할 수 없는 감정의 세계라고

육신을 지옥으로 내모는 사람들

그들이 휘두르는 몽둥이가 열탕이었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어 불안했던

몽둥이는 호모사피엔스의 도구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때려잡던 도구였지만

인간의 맞춤법에 神의 이름을 붙인 몽둥이는

감정을 오독한 나무토막이었다  

세상의 어떤 몽둥이도

말로 풀어, 쓸 수 있다면 지옥이 아닐 것이다

“생명은 어디에서 태어나고 무엇 때문에 주어졌으면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가"*

천국의 존재를 물을 때마다

허기의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질문은

제단 위에 받쳐진 번제물일 뿐  

분노는 보호색을 띤다고

들끓는 물을 변명했던 냄비도

싱싱하게 삶아진 오징어를 먹던 나의 감정도

통각을 외면한 몽둥이가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산채로 삶아지는 것과 죽은 채로 삶아지는 것

어느 쪽이 맛있는 죽음인지

어느 쪽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의인지

 

 

 *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

―격월간『현대시학』(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