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귀가 슬픈 사람 /서수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2. 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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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슬픈 사람
서수찬
나는 아래층 치킨 집 매상을
계단을 밟고 안 내려가 봐도 다 안다
영업이 끝나고
셔터 내리는 소리에
그날 매상의 이력이 다 적혀 있다
나는 장부를 들여다보듯 읽는다
매상의 오른 날의 셔터 소리는 거침이 없이 부드럽게
촤르르 촤르르 내려간다
셔터를 내리는 손길이 부르는 노래가
내 달팽이관에 즐겁게 모인다
매상이 저조한 날에는
셔터가 마지못해 내려오느라
끼걱 끼걱 찌그러진 소리를 낸다
내 귀는 얼른 가서
안 내려오려는 셔터를
억지로라도 도와서 내려주고 온다
어쩌자고 치킨 집 주인은
내 귀에다
가게의 비밀을
속속들이 다 적는 걸까
―시집『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시인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