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처음 접시 /최문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4. 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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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시

 

최문자

 

 

결혼하고 석 달쯤 지나서

우리는

처음 접시를 깨뜨리고

처음으로

캄캄함을 생각했다

두 가지 이상의 무거운 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사랑은 빵과 다른 중력

 

식탁 위에서

팔을 힘껏 뻗어도 팔이 닿지 않던 가난

접시에 담긴 빵들이 무거워서

나는

그 단단한 곳

낯선 마루 위에

여러 번 접시를 떨어뜨렸다

 

손가락을 베고

문을 열고 나와

들판 나무처럼 서 있었다

 

깨진 접시에서 꺼낸 말들

빵 안에 없었던 사랑의 문장

 

깨진 접시에도

빵의 손이 달려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노트에다 내 것이 아닌 빵의 이야기를 썼다

 

 

 

―시집『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민음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