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오랜 벗에게서 /류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4. 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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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벗에게서
류흔
오랜 벗에게서 전화가 왔네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잘 있다 말하려다 하지 않았네
뒤란 대숲 서걱대는 소리를 들으며
끝내 주소를 일러주지 않음도
참 잘한 일이다 싶네
문지방을 넘어온 그늘이 양말을 적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벗어 구석에 놓고 나서
뒤로 벌렁 누웠네
천장은 하늘만큼 높고
생활은 바닥같이 낮으니
부러 시 쓰려 애쓰지 않는다네
열어놓은 쪽창 밖으로
하늘에 우거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쓰르라미 울음인지
오전에 든 벗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나서
볼륨을 낮춰놓은 전화벨 소리인지
낮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네
ㅡ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