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유사비행 /이혜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5. 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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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비행  

 

이혜선

 

 

우화를 꿈꾸었다

 

바람 타고 날아보아도

절벽에서 떨어져도 날개는 돋지 않았다

 

네 쌍의 다리로 줄을 탄다

머리가슴* 하나로 깊게 느끼고 동시에 교감한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식힌다

 

날개 대신 실을 토한다

강철보다 강한 생명밧줄

수억년 진화해온 피브로인fibroin 단백질, 몇몇생生을 연구해온 공법

새 생명집을 짓는다

별이 뜨는 방향, 영원히 이어나갈 겨레의 제단에 걸어둔다

 

나는 아직도 거미, 유사비행에 목숨 건다

펜 끝에 생명밧줄 토하며

시인의 극한 불행을 예감해도*

무한 허공, 또 꿈꾼다, 날아오른다

 

*거미 몸은, 머리와 가슴이 같이 있는 머리가슴과 배로 구성되어있다.

*빅토르 위고, 샤토브리앙을 추모하는 시 「Odes et Ballades/À M. de Chateaubriand」 차용.

 

 

 

―『시와소금』(2022,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