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명랑한 계란 /이화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5. 7. 08:56
728x90

명랑한 계란
 
이화은
 
 
까르르 까르르
아래층 베란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덩굴째 올라오니 마리아가 또 알을 낳은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학교 앞에서 산 삐약이가 저만큼 자라
알을 낳는 어엿한 어미 닭이 되었다
그 닭이 마리아다
지 어미의 세례명을 마리아 마리아 장난치듯 부르다가
마리아가 정말 마리아가 된 것이다
 
아이는 한 번도 아빠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쉬! 쉬! 속에 숨은 아빠가
궁금하지 않다
 
아이가 심심해지면 마리아가 알을 낳는다
마리아가 알을 낳으면 아이는 뚝 울음을 그친다
마리아가 낳은 알을 가슴에 품고 아이는
목화꽃처럼 명랑하다
 
아빠가 없어도 아이의 종아리는 한 뼘씩 쑥쑥 자란다
그 뽀얀 종아리로 온 동네를 계란처럼 굴러다닌다
아이가 덩굴째 끌고 다니는 명랑이
골목마다 자욱하다
 
베란다가 세상의 전부이지만
바깥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명랑한 알을 낳아 명랑한 아이를 키우는 마리아
마리아가 키운 아이를
성모 마리아가 키운 아이라고 말할 뻔했다

 

 


 –시집『절반의 입술』(파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