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아버지의 빈자리 /최수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6. 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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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빈자리

  

최수일

 

 

감천(甘川)내가 내려다보이는 호미산 날망

비탈밭 밭머리에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 그 아래

내가 찾던 빈자리 하나 있었다

 

객지에서 일한다며 한해 한두 번 집에 들를 때마다

내겐 낯설기만 했던 아버지

그가 만든 빈자리를 낮엔 농사일로

밤엔 별을 따서 채우셨던 엄니

 

그 자리 내가 채우길 바랐는데, 그때마다 난

그 빈자리를 호미산 소나무 밑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곳에서

일찍이 별이 된 어린 누이를, 먼 데로 시집간 사촌 누나를,

소쩍새 우는 밤 소반장이 아버지를 따라 마을을 떠난 경란이를

또 어떤 때는 먼 산에 발이 묶인 뭉게구름을 불러오기도 했다

 

산이 제 그림자를 끌고 냇가로 내려와

물가에서 머뭇대는 별들을 하늘로 밀어 올리고, 난

그 자리를 떠나곤 했다

 

엄니의 빈자리를 이제는 좀 알 것도 같은데

오래전에 별나라로 떠나 빈자리로 남아있는 당신

 

 

 

―『다시올문학』(2022,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