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가왕도 가는 길 /최삼용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6. 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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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도 가는 길

 

최삼용

 

 

간혹 삶이 부담스러워

한 번쯤 길을 잃고 싶은 날 있다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가왕도로 가자

드러누운 묘혈 자리에서 별 헤는 망자의 삭은 가슴 닮아

언제나 침묵한 채 바다를 지키는 작은 섬

은둔이나 칩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인적 떠나 시간까지 멈춘 그 섬에 들면

온통 코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을 추리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오늘의 곤궁 또한 풍요의 척도가 되겠지만

겨울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에

빨간 입술 벌린 채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켜도 뭍에서 끝난 지도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 찾을수 없어

말품 발품 다 팔아야 하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온 걱정 삭혀 두고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을 잃으려 하네

 

 

 

―시집『그날 만난 봄 바다』(그루,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