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6. 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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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국

고성만


언제 우리나라로 왔는지 모른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 황금의 관을 두르고
휘황하게
채색하는 꽃의 영토

너를 보면
햇빛에 찔려 살인 범하는
뫼로소*가 생각나고 너를 보면
이국땅으로 시집간
누이가 생각난다

어찌어찌 도시로 이사 온 지 사십 년 넘어
나날이 쌓이는 게 근심인데
한순간 문득
어디론가 증발하고 싶을 때

나도
헬리콥터처럼
여러 개의 날개 달고
낯선 땅으로 훨훨 떠나갈 수 있을까

가다 가다 문득 발이 닿으면
그곳에 뿌리 내린 후
수십 만 평 들판에
불을 지르는 거야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휩쓸려
비를 부르는 거야


*뫼르소 :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주인공.

 



ㅡ 『시와사람』(2022,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