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장마의 일 /강빛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7. 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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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의 일

 

강빛나

 

 

네 지하가 순식간 불은 빗물에 첨벙거리면

여름의 시작이었다

만날 때마다 눅눅한 짜증이 끈적였지만

 

상관이 없었다

 

복숭아를 세 박스쯤 먹고서야 더위를 끝내는 나는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너의 체질이 궁금했다

어쩌면 한 그루 실과를 보면서도 닮은 곳이 없어서

지루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번번이 날씨를 빗나간 외투 없는 천도복숭아 기분 같은

네 겨드랑이에서 물비린내가 올라온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 밤부터 나무의 등 쪽을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마다 네 입에서 곰팡이 포자가 터졌다

너는 적당한 수분의 아빠와

까칠한 단맛의 엄마와

만나도 아직 만나지 않은 반대편의 나 같았다

 

기억하는 후각은 비리고 물이 고인 발처럼 칙칙했다

그래도 너였으므로

난생 처음 뭉근한 진흙에 발목을 뺏기고도 무섭지 않았는데

 

잦은 비에 싱거운 복숭아를 베어 물고 너를 보러 간 날

등 뒤에서 폭풍 접영으로 달려오는 하마 같이

그렇게

절망은 검고 단단한 뿔로 오래 남을 줄 몰랐다

 

 

―계간『문학과 사람』(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