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슈뢰딩거의 고양이 / 김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8.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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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김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누군가 머물다 떠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일만 가능할 뿐
타협할 수 없는 두 죽음 사이에 나는 끼어있었죠
내가 좇던 무지개는 주인을 물고 날뛰는
무지한 개의 비명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별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빛이었죠
공포는 고요하게 네모난 방으로 내려왔어요
상자 안에 갇힌 어둠이 나인지
내가 어둠을 가두었는지
앞뒤 없는 나날이 서성이다 지나갔죠
달라붙는 두려움을 털어내며 가릉 거리는 동안
의문에 싸인 꽃무릇 간격이 형성되고
시곗바늘은 차분하게 오른쪽으로 죽어나갔죠
평소 서로를 비추며 떠나는 고전적 이별을 선호했지만
당신이 사라지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해요
안타까움에 저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어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불러 고백을 듣게 하네요
하긴, 어느 쪽을 택해도 만나는 동그란 울음을 가졌는데
죽은 듯 산 듯 황홀한 이 기면을 공포라 믿었던 것은 나의 실수
그거 알아요, 날카로운 비명을 삼킬 용기가 없다면
어두워지는 일에 우린 익숙해져야 하지요
혼돈의 모서리에 앉아
죽음 사이 끼어있는 질문들의 재촉받는 밤
눈 감아야 선명해지는 것들이 늘고 있으니
죽어도 난 살았다 할 수 있을 거에요
―반년간『상상인』(2022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