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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세탁소 /이주송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9. 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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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세탁소

이주송


이 골목의 그림자는 뾰족해요
밖에서 안으로 밀어내는 힘이 나뭇잎으로
자라니까요

보세요 바늘 하나로 몸의 흉터를 가려주는 사람을
여기서는 미움마저 봉할 수 있다네요
오랜 박봉으로 살아왔지만
그 사람 박봉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네요
작업복 밑단에는 온전하지 않은 침묵이 묻어있네요
햇볕을 잘라 와 찢긴 면바지에 무늬를 새기죠
그건 바지에 눈을 달아준 것인데
아무도 모르죠

넥타이에 얼룩이 생겼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회화나무에서는 얼룩도 헹궈내는
바람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가 여러 번 기워진 자리를 또 기워요
기운다는 일은 밤의 상처에 달과 별을 다는 것이지요
가게 문이 여닫칠 때마다 솔기 터진 인사말이
회화나무 세탁소를 여는 비밀인데요
다름질 끝날 옷에는 결을 가진 마음이 빛나죠

바람을 등진 낙타가 제 주인을 싣고 와
몸을 수선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몸 대신 보푸라기 마음을 말끔하게 지워주죠
그런데요 누더기 그림자 달고 사는 그 사람
보푸라기 꽃이 브로치가 된다고 믿고 살아요



ㅡ계간 『시산맥』(2022,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