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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사이 하얗게 피어 오르는 저녁밥 짓는 연기
끝없이 펼쳐진 황토길… 뻘… 南道의 맑은 숨소리
끝없이 펼쳐진 황토길… 뻘… 南道의 맑은 숨소리
관련이슈 :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200905060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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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강진 영랑 생가 뒤안의 대숲을 배경으로 송수권 시인이 상념에 잠겨 있다.
남도의 큰 서정시인 송수권(순천대 명예교수·69) 시인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그의 고향 고흥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순천에 살고 있는 그가 마침 광주에 올라올 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합세해 영랑문학제가 열리는 강진에 들렀다가 최종 목적지인 고흥에 함께 가기로 약속한 참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이 여정은 광주 역전에서 섣불리 재단했던 시인의 ‘촌놈’ 이미지가 차례로 깨져나가면서 논리적이고 강건한 남도의 서정시인 하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산문에 기대어’ 부분)
오늘날 시인을 있게 한 이 명편은 휴지통에서 건져냈다. 원고지가 아닌 갱지에 흘려 써 ‘문학사상’에 응모한 이 시는 휴지통으로 들어가버렸지만, 이어령씨가 발견하고 여관 주소만 적혀 있던 응모작의 주인을 수소문해 1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1975년 데뷔 과정의 일등공신이 이어령씨였다면, 정작 이 시를 존재하게 한 건 젊은 나이에 자살한 동생이었다. 시인의 친모는 일찍 죽었고, 계모 아래 두 형제가 살았다. 그중 한 혈육이 군에서 제대한 다음 날 친모의 무덤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무덤 주변에는 동생이 먹다 만 알약들이 이슬을 받고 있었다. 눈썹이나 머리카락 같은 사람 몸의 터럭들은 죽어서 매장을 해도 오래 썩지 않고 남아 그 사람의 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죽은 동생의 눈썹이 가을산 그림자에 빠지고, 기러기가 그 눈썹을 물고 날아다니는 풍경 속에서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라는 구절은 그가 와서 나의 빈 잔을 채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제의(祭儀)’를 연상케 한다. 그러니 제목의 ‘산문(山門)’이란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셈이다. 시인은 어느 대담에서 ‘결국 누굴 그리워하고 산다는 것은 이 슬픈 제의(祭儀)를 되풀이하는 끝없는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5월의 사랑’ 부분)
강진 가는 길 차창으로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시인은 차 안에서도 연방 담배를 놓지 못한다. 하루에 세 갑 정도는 피운다고 했다. 하릴없이 조금 내려놓은 창틈으로 빗방울이 들어와 얼굴에 튀긴다. 저물녘 강진은 비가 오는데도 축제분위기가 완연했다. 영랑문학상을 시상하는 강진문화회관에는 지역사회 유지들이 보낸 화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지역의 문인들은 물론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네들까지 ‘굿’을 보겠다며 몰려들었다. 일기가 불순한 데다 강진의 일정이 늦어져 그냥 그곳에서 일박을 한 뒤 다음 날 고흥으로 가기로 했다. 그날 밤 강진의 식당에서 늦은 시각까지 송수권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순천사범학교를 나와 서라벌예대까지 졸업했지만 등단이 여의치 않아 문학 화병이 들었던 데다 피를 나눈 형제마저 자살해버리자 20대 초반의 젊은 시인은 섬으로 발령을 자청해 초도중학교 교사로 6년을 살았다. 여수에서 뱃길로 오래 달려 거문도 못 미쳐 당도하는 그 섬에서 시인은 문학을 제쳐두고 낚시에 빠져 살았다. 첫 발령지의 중학교에서 만났던 제자를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섬에 들어와 3남매를 낳았다. 6년이 지나고 다시 섬으로 발령이 나자 시인은 섬을 나와 홀로 절과 도시를 떠돌았다. 어쩌다 서울에 입성해 서점에서 다시 처음 보게 된 문예지가 ‘문학사상’이었고 여관에 틀어박혀 갱지에 응모작을 써서 투고한 뒤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데뷔하게 된 거였다. 이후 그가 펼쳐온 시의 풍경은 남도의 정서를 대변하는 진경이었다.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대숲 바람소리’ 부분)
그는 남도 정서의 핵심으로 대나무와 황토, 그리고 뻘을 꼽았다. 댓잎이 살랑거리면서 내는 사각거리는 속삭임은 서늘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어디선가 듣기론 뒤안에 대나무를 심어놓으면 마음이 산란해지는 연고로, 선비의 집에선 될 수 있는 한 피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송수권의 대나무론은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깨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대나무는 남도의 일상에 스며든 풍경이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들의 재료였다. 충청 이북지역에서 자생할 수 없는 나무여서 그 자체로 남도의 특성을 반영하거니와 죽순에서부터 대바구니, 연, 활, 죽창으로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쓰임새는 남도의 상징이나 다름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대밭을 끼고 낮게 몽기작거리며 서서히 돌아나가는 저녁밥 짓는 연기에 대해 말하며, 남도의 노래는 높이 흔들어대는 소리가 아니라 땅을 밟는 소리라고 했다. 일단 남도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그 DNA의 60%는 무조건 무당기질을 타고난다고 했다. 그 ‘끼’란 시나위나 산조 같은 무한자유의 신명일 것이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댓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 미친 불개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 부분)
◇순천만 뻘에서 새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송수권 시인은 “이 세상 뻘물이 배지 않은 모든 삶은 싱겁다”고 했다.
“자욱하다/ 진창이 된 저 삶들, 물이 썬 다음 저 뻘밭들/ 달빛이 빛나면서 물고랑 하나 가득 채워 흐르면서/ 아픈 상처를 떠올린다 저 봉합선(縫合線)들,/ 이 세상 뻘물이 배지 않은 삶은/ 또 얼마나 싱거운 것이랴”(‘곰소항’ 부분)
시인은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이 있는 변산반도에서도 몇 년 살았다. 이곳에서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이라는 시집도 펴냈다. 평생 방황하고 방랑하는 삶이었지만 중고교 교사 30여년을 청산하고 이곳에 머물다가 ‘학사는 물론 박사학위도 없는 국립대교수 1호’로 초빙되어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맡았다.
강진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고흥으로 내달렸다. 고흥군 두원면 학림마을. 이곳이 시인이 태어난 동네이자, 그가 누이와 함께 2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던 현장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시인의 생가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빈 방의 장지문은 종이가 떨어져나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는 전날 밤 강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시에 대거 수용한 그의 시작에 대한 신념, 가락을 무시하고 역사성이 빠진 요즘 현대시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서도 토로했었다. 그가 최근 탈고한 지리산 빨치산들에 관한 대하서사시 이야기도 이어졌다. 송수권의 시는 남성적이고 강건한 서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그날 밤 동석했던 한 시인이 그에게 “선생님 시에는 연애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자,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귀경한 뒤에서야 그의 절절한 연애시 한 편을 발견했는데, 그 시 역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피어 있었다.
“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들고/ 밤이슬 풀비린내 옷자락 적시어가며/ 네 집에 들리라”(‘석남꽃 꺾어’ 전문)
선임기자 jhoy@segye.com
대숲 바람소리
송수권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하게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댓이파리의 맑은 숨소리■송수권 연보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1959년 순천 사범학교 졸업 ●1962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7년 영주중학교 교사로 부임, 이후 30여년간 교사 생활 ●1975년 ‘산문에 기대어’ 외 4편으로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2002년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 ●소월시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문학상 등 수상. 시집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아도’ ‘새야 새야 파랑새야’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산문집 ‘남도의 맛과 멋’ ‘아내의 맨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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