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배경 김나연 남쪽 끝 섬에 와서야 알았네 당신이 내 배경인 줄 오동도에는 붉은 동백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을 꺾어 뛰어내리며 화려한 꽃물을 들이고 있었네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동백꽃과 지상의 동백꽃이 어우러져 섬은 불타고 바닷바람은 먼 데서 오는 봄소식을 실어 날랐네 사랑나무는 마음을 기대듯 서로 몸을 포개고 있었지 동백이 미련을 버린 자리에 윤기 나는 검푸른 잎사귀 반짝였네 나는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있어 내가 있는 줄 알겠네 동백꽃이 미련 없이 뛰어내린 건 사시사철 푸른 배경이 되어 주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 내게도 배경이 되어 주는 당신이 있어 내가 빛날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네 ―반년간『시에티카』(2023년 상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