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원고 9

메아리

메아리 정호순 바람아, 가슴 떨린 이별 통고 하지마라 돌아서면 그만이지 매정한 말 왜 하시나 저 산 저 산울림 소리 파편 되어 돌아온다 구름아, 후회 마라 속없는 말 뱉어놓고 모진 말 불쑥 던져 네 맘인들 편할까 우짖는 저 메아리도 제 울음 겨워 운다 찌익찍 직박구리 날아간 숲 사이로 탕탕탕 딱따구리 가슴에 못 박는다 산새야, 뒤돌아볼지언정 잘 가란 말 하지 마라 ―계간『詩하늘 108』(2022년 겨울호)

시 원고 2022.12.19

꽃 피는 봄날―2018 동생을 보내며 /정호순

꽃 피는 봄날 ―2018 동생을 보내며 정호순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구나 산벚꽃 라일락꽃 사방에 지천인데 네 모습 어느 꽃 속의 벌처럼 숨었느냐 도망가고 싶다더니 어디로 숨고 싶다더니 아픔이 없는 곳 무서움 없는 곳으로 아무도 찾지 못하게 아주 꽁꽁 숨었구나 형, 형 부르던 수화기 목소리 귀에 젖고 잊었다가 생각이 나 눈물이 흐르는데 그리운 그 아픈 마음 누구에게 말할까 더 한번 보고 싶고 다시 못 봐 안타깝고 마지막 밥 한 끼 못 나눠서 미안하고 소소한 하찮은 고통 아픔으로 남는데 천둥 번개 몰아치며 장맛비 쏟아진다 전생 있어 우리가 현세에 만났다면 내생에 한 번 더 다시 형제로 보자꾸나 ―계간『詩하늘 107』(2022년 가을호)

시 원고 2022.12.09

꽃 피고 새가 울고ㅡ외손녀 하윤이에게

꽃 피고 새가 울고 ㅡ외손녀 하윤이에게 정호순 톡, 톡, 톡... 들뜬 마음에 풋잠 든 신새벽 누군가 내 잠을 깨우는 창문 두드리는 소리 초아의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네가 왔구나 돌돌돌 노래하는 산골짜기 시냇물처럼 그렇게 왔을 거야 우리는 모두 네가 오기를 오래전 약속처럼 기다렸단다 어떤 꽃일까 어떤 새일까 참으로 궁금했지 살포시 감은 눈엔 꽃잎이 열리고 꽉 쥔 주먹은 잘 여문 도토리 한 알 찡그리던 미간이 펴지며 댁대구르르 배냇짓 웃음소리 꿈꾸듯 칭얼거리면 지나가는 솔바람도 걸음을 멈추고 다보록한 머리카락 진한 속눈썹 폴락폴락 날갯짓하는 나비가 앉아 차안의 세상만사 네가 와서 새 울고 꽃이 피고 웃음꽃 피는구나 ―계간『詩하늘 106』(2022년 여름호)

시 원고 2022.07.05

소방관을 위하여―평택 물류 창고화재로 순직한 3명의 소방관을 기리며

소방관을 위하여 ―평택 물류 창고화재로 순직한 3명의 소방관을 기리며 정호순 봉사라는 이름을 섬기며 살았나이다 불이라는 이름을 새기며 살았나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화마로 달려드는 우리는 누군가의 귀하디 귀한 자식이며 누구의 자상한 아버지요 띠앗의 형제이며 퇴근하면 만나는 평범한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저에게 두려움을 없게 해주시고 화구로 뛰어드는 저에게 한치의 망설임이 없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화재현장의 희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예민한 청각을 주시옵고 어둠 속에서도 톺아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시옵소서 불길을 잡으려고 화마에 맞서는 저에게 무모함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하옵시고 소방관이라는 그 소중한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하냥 톺아보게 하옵..

시 원고 2022.03.12

북한산 연가(戀歌) 1/정호순

북한산 연가(戀歌) 1 정호순 1, ―백운대 지난밤 비바람 몹시 불고 천둥 번개 요란했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있는지요 비 내리는 지지난 봄엔 진달래능선으로 올랐다가 지난가을은 단풍 고운 하루재 고갯길로 올랐다가 눈 내리는 오늘은 북한산성 대서문 골짜기로 당신을 뵈러 갑니다 풍경에 들면 풍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듯 산에 들면 산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늘 내 속에 있는 당신 당신 품에 안기면 당신이 보이질 아니하고 당신 품에 있어도 당신을 못 찾아 산을 올라도 산을 내려와도 나는 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2. ―인수봉 당신은 내게 있어 언제나 멀고 먼 당신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늘 거기에 그대로 계시기에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3. ―만경봉 아름다워라 만경대! 무슨 말 더 필요할까..

시 원고 2021.12.25

가을의 길목에서 /정호순

가을의 길목에서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시를 써서 야금야금 땅에 묻는 사람이 있었네 아는 이 알아주는 이 없이 아무도 모르게 홀로 쓰고 지웠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비 내리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만추의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람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색깔도 음색도 알 수 없는 사람 떨어진 꽃잎처럼 땅에 스며든 빗물처럼 멈춰진 공간 속에 정지되어있는 사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 문득 생각나 탐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리산 골짝 어디쯤 요양중이라 했는데 홀로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

시 원고 2021.10.22

산, 산 북한산(삼각산) /정호순

산, 산 북한산(삼각산) 정호순 1 왔느냐 보았느냐 소소리 아침을 여는 인수봉 만경대 좌장 우장 거느리고 백운대 백봉白鳳 한 마리 흰 나래 펼쳐 앉는다 2 노루막이 명지바람 산자락 물결치면 아련해라 산벚꽃, 진달래 첩첩 불 지르고 참나무 까치 부부는 리모델링 여념 없다 3 구천 계곡 구천 폭포 쌍무지개 내 걸었다 깃대종 오색딱따구리 망치질 멈춘 나절 비폭飛瀑의 날갯짓 소리 능선 넘어 골 울린다 4 산성의 금성탕지* 숙종 숨결 어리운 곳 문수봉 산정에서 우이동 골짝까지 말을 탄 홍의장군의 붉은 깃발 내닫는다 *북한산 숙종의 길(어제시) ⸺계간『詩하늘/통권 102호』(2021년 여름호) ---------------- 수정 북한산 연가(戀歌) 2 정호순 왔느냐 보았느냐 소소리 아침을 여는 인수봉 만경봉 좌우장..

시 원고 2021.06.07

광속구 ―2020~2021 봄 /정호순(계간『詩하늘 101』(2021년 봄호)

광속구 ―2020~2021 봄 정호순 새순이 움트기도 전 새봄은 몹쓸 꿈으로 지구촌을 덮쳐 왔다 정체불명의 미사일 삽시간에 대한민국 세계 곳곳, 지구촌을 점령했다 어느 전쟁이 이보다 속전속결이었던가 병사의 군홧발로는 밟을 수 없는 속사포 총알보다 빠른 광속으로 지구의 한 도시 도시를 농무처럼 장악하기 시작했다 냄새도 형태도 없는, 맛도 생각도 이데올로기 이념도 없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저격과 무차별 포격만 있을 뿐 폐가의 뜬소문처럼 괴담이 흉흉하다 만지지 마라, 붙지 마라 누구도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는 너도나도 표적이 되고 과녁이 될 수 있는 지금 단순 타박상도 한 번 맞으면 족히 보름을 간다는 저 괴물 투수의 광속구 3루도 2루도 1루도 피난처가 될 수 없는, 홈으로 도루하는 포수의 마지노선..

시 원고 2021.03.06

주머니 속의 행복 /정호순 ―계간 시하늘 통권 100호 기념

시하늘 100호 원고 시 - 2편 1 주머니 속의 행복 ―시하늘 통권 100호 기념 2 시하늘 ―연서(戀書) 수필 - 1편 1 내게 있어 시하늘은 이름 – 정호순 ----------------------------- 주머니 속의 행복 ―시하늘 통권 100호 기념 정호순 언제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 우리 모두는 바람이었고 들풀이었고 목마른 가뭄이었지 당신과 내가 만나 꿈을 만들고 꿈을 만나 바람을 만들고 염원을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지 *주머니 속의 행복을 만들었지 사랑이 아니던가 ―세상에 거저 주는 사랑은 없지 믿음이 아니던가 ―저절로 생기는 믿음은 없지 인연이 아니던가 ―그늘도 나무가 만든 인연이지 그 사랑 그 믿음 그 인연들 매듭 엮듯 고이 이어 가리라 어서 오시라, 미지의 詩友여 우리 함께 만들어갈 ..

시 원고 202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