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중력 /신철규 눈물의 중력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너무 눈부셔서 온몸이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7.03.29
고한에서 /나호열 고한에서 나호열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굽이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먼 이름 부르고 싶으면 산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돌다가 목이 메고 말지 그렇게 낮게 낮게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 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6.02.12
종이의 나라/김양아 종이의 나라 김양아 등 굽은 새벽이 낡은 손수레에 쌓아올린 묵직한 산을 끌고 간다 어느날 악몽을 꾼 나무들이 두꺼운 종이상자로 변신해 차곡차곡 포개진다 소비를 즐기는 도시는 끊임없이 포장을 벗겨낸다 택배는 쌓이고 박스의 접힌 각이 풀리고 모서리가 무너진다 바깥으로 밀려나..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6.01.05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愛)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10.14
행복 / 유치환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10.14
감자꽃 따기 / 황학주 감자꽃 따기 황학주 네가 내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었는지 흰 감자꽃이 피었다 폐교 운동장만 한 눈물이 일군 강설(降雪)하얗게 피었다 장가가고 시집갈 때 모두들 한 번 기립해 울음을 보내준 적이 있는 시간처럼 우리 사이를 살짝 데치듯이 지나가 슬픔이라는 감자가 달리기 시작하고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08.28
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 빈센트 밀레이 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빈센트 밀레이(1892∼1950) 활짝 편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습니다. 보석 장식도 없고, 숨기지도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랑. 누군가 모자 가득 앵초 꽃을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립니..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07.24
치매 걸린 시어머니 / 진효임 치매 걸린 시어머니 ―진효임(1943∼) 눈도 못 맞추게 하시던 무서운 시어머니가 명주 베 보름새를 뚝딱 해치우시던 솜씨 좋은 시어머니가 팔십 넘어 치매가 왔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손발은 말할 것도 없고 방 벽에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소변도 못 가리시면서 기저귀를 마다..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07.24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 김희정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김희정(1967∼ )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너희들이 태어나고, 제일 먼저 그림자를 버렸단다 사람들은 아빠보고 유령이라 말하지만 너희들이 아빠라고 불러줄 때마다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단다 다음으로 버린 것은 남자라는 단어야 폼 잡았던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07.24
차가운 사랑 / 정세훈 차가운 사랑 ―정세훈(1955∼)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뜨겁게 달굽니다 어미 곰이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에 왔습니다 어린 새끼 산딸기를 따먹느라 어미를 잊었습니다 그 틈을 타 어미 곰 몰래 새끼 곁을 떠납니다 어미가 떠난 곳에 새끼 혼자 살아..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