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종이의 나라/김양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1. 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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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나라

 

김양아

 

 

등 굽은 새벽이

낡은 손수레에 쌓아올린 묵직한 산을 끌고 간다

어느날 악몽을 꾼 나무들이

두꺼운 종이상자로 변신해 차곡차곡 포개진다

 

소비를 즐기는 도시는 끊임없이 포장을 벗겨낸다

택배는 쌓이고

박스의 접힌 각이 풀리고 모서리가 무너진다

바깥으로 밀려나 독거노인과 한 묶음이 된다

 

종이의 나라

그들만의 거래처는 치열하게 움켜쥔 밥줄이다

구역은 쉽게 얻을 수도 없고 내주지도 않는다는 게

그들 사이의 불문율,

땀 한 되에 60원을 쳐준다는 종이박스는

앞 다투어 수거된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로

고단한 노구를 밀어내는 도시

시장골목과 상가를 돌아온 새벽이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저 아찔함, 다급한 클랙슨이 바퀴를 밀어붙인다

 

발품을 팔아 엮은 오늘의 노동이 기우뚱거린다

 

 

계간미네르바(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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