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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나라
김양아
등 굽은 새벽이
낡은 손수레에 쌓아올린 묵직한 산을 끌고 간다
어느날 악몽을 꾼 나무들이
두꺼운 종이상자로 변신해 차곡차곡 포개진다
소비를 즐기는 도시는 끊임없이 포장을 벗겨낸다
택배는 쌓이고
박스의 접힌 각이 풀리고 모서리가 무너진다
바깥으로 밀려나 독거노인과 한 묶음이 된다
종이의 나라
그들만의 거래처는 치열하게 움켜쥔 밥줄이다
구역은 쉽게 얻을 수도 없고 내주지도 않는다는 게
그들 사이의 불문율,
땀 한 되에 60원을 쳐준다는 종이박스는
앞 다투어 수거된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로
고단한 노구를 밀어내는 도시
시장골목과 상가를 돌아온 새벽이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저 아찔함, 다급한 클랙슨이 바퀴를 밀어붙인다
발품을 팔아 엮은 오늘의 노동이 기우뚱거린다
―계간『미네르바』(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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