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행복 / 유치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0. 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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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일간『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50』(조선일보,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