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신춘문예♠문학상·신인상♠등단작 201

[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장원〉 고다 -김미경 복닥복닥 걸어온 한 생애를 읽는다 쇠심줄 돋우며 달구지 짊어진 길 뼛속에 돋을새김 한 우직을 풀어낸다 커다란 두 눈으로 세상을 굴리며 변죽 울듯 끓는 바람 쇠귀에 경을 읽고 채찍질 멍에 진 등짝 이골이 다 배겼다 한나절 턱 괴어 시간 함께 고는데 울멍울멍 삭힌 말 그제야 녹는다 말로는 다 뱉지 못한 골수 박힌 저 진국 김미경 1966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사범대학 졸업.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재학중. 2019년 이조년백일장 차상. 2020년 중앙시조백일장 7월 차상. 팔공산 다락헌 회원. 〈차상〉 참깨 밭 -문희원 타닥타닥 울음소리 애타기만 하여라 땅심을 부여잡은 푸른 탯줄 끊어지면 여린 것 강보에 싸여 햇살 세례 받는다 여기는 다산면..

[제39회 중앙시조대상] 단추 달다 끄적인 메모의 깜짝선물

중앙신춘시조상 - 김나경 구멍 기둥이 풀려있는 단추를 그러안은 헐렁한 하품이다 배고픈 결속이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지금 잠시 흔들린다 생명이 없는 것은 그 어둠을 알 수 없지 맨 처음 잠겼으니 맨 나중 풀린다는 입술이 어처구니없게 헛소리를 물고 있다 소통이나 화해 같은 말랑하고 둥근 약속 나가려는 너를 잡고 매달리다 떨어져도 한 가닥 실오라기는 변치 않을 흔적이다 조심조심 건너온 2020년 한 해가 저무는 12월, 당선 소식은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이 무게가 기쁨일까요. 한순간 먹먹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장을 하면서도 대학진학은 문창과가 아닌 군사학과를 지망한 것은 집안의 큰 그릇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군으로 근무하면서도 마음속 새 한 마리는 ..

[제39회 중앙시조대상] 단정하게 비운 ‘맑은 가난’ 그려내고 싶었죠

중앙시조대상 - 서숙희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문학상인 제39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으로 서숙희(61) 시인의 ‘빈’이 선정됐다. 중앙시조신인상엔 류미야(50) 시인의 ‘물구나무서기’가 뽑혔다. 등단 무대인 제31회 중앙신춘시조상은 김나경(26)씨의 ‘구멍’이 차지했다. 등단 29년 만에 중앙시조대상 엄마 향한 유년의 그리움이 문학·생을 향한 갈망으로 승화 중앙시조대상은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5년 이상인 시조 시인, 중앙시조신인상은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 시인이 수상자격을 갖는다. 중앙신춘시조상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실시한 중앙시조백일장 입상자들로부터 새 작품을 받아, 그중 최고 작품을 기리는 연말 장원 성격이다. 중앙시조대상과 신인상 예심은 시조..

[제39회 중앙시조대상] 생의 낯선 풍경과 마주하라는 격려

[제39회 중앙시조대상] 생의 낯선 풍경과 마주하라는 격려 [중앙일보] 입력 2020.12.07 00:02 수정 2020.12.07 15:42 | 종합 18면 지면보기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1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 중앙시조신인상 - 류미야 물구나무서기 절벽을 오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스스로 벽이 되어 칼바람도 들이는 한 그루 푸른 나무로 발춤 추며, 날아오르며, 새로움을 위해서라면 낯선 ‘포즈’라도 취해야 할 것 같은 시간입니다. 연작물의 수치를 더하거나, 끝없이 기능과 디자인을 바꿔 가는 것들도 그런 증명이라면 증명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천 년을 통과해온 문학 형식이란 걸맞고 유효한 것인지요. “왜 하필 시조”인..

제2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2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대상] ‘조령진산도’를 읽다 / 김영욱 사라진 호랑이가 배꼽을 떨어뜨린 곳은 이쯤일 거야 성곽 옆구리에 엎드려 숨소리에 귀기울여봐 고깔 운무 쓰고 돌아앉은 어미 산 새재를 품에 안은 그림자도 우뚝한데 골짝 물길이 실핏줄로 감아 도는 등고선 한가운데 어느 멸망한 종족의 태실이 있지 예로부터 태를 묻은 곳엔 복이 들었지 장돌뱅이들이 등목을 하던 삼복더위에도 털옷을 걸치고서 평생을 떠돌았을 호랑이가 죽어서도 숲의 으쓱한 쇄골에 덮어둔 가죽은 하룻밤 묵어가는 길손들의 지름길 되고 봄비도 티 나지 않게 몸 낮추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성황당 어디쯤일 거야 처녀치마로 둘러쳐진 아름드리 귀목을 노령의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있는 무림에서 아침햇살도 동티가 나지 않게 ..

제1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1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대상]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 황종권 이것은 곰의 갈비뼈 속으로 난 길이다 저 억새풀이 곰의 털이라는 것은 바람만이 안다 뻣뻣하지만 구불거리는 나무는 곰의 이빨 돌부리에 넘어진 무릎만이 비로소 신발 끈을 매고 첩첩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꽃들이 곰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자국을 밀어올리는 것은 길이 아니라 곰의 숨소리, 으스스 별자리가 돋는 것도 제 등허리를 바위에 긁은 까닭이다 발목이 늘 벼랑인 사람들이 있다 떨어지지도 주저앉지도 못하는 힘으로 아비가 될 사람들은 발목에 불씨를 지폈으리라 아니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힘으로 신열 들키지 않게 제 짐을 산맥에 맡겼으리라 문경새재, 산적도 피해 가는 길 피처럼 붉은 달, 곰의 내장을 밝혀준다 울 수 없..

최재영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갈매기식당/버드나무 여인숙/코스모스*/주머니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최재영 물에 젖기 위해 100년을 걸어가는 나무가 있지요 퉁퉁 부르튼 맨발 사이로 세상의 저녁은 소리없이 스며들고 다가오는 천년을 가만 응시하느라 나는 바짝 가물어 있었지요 간절함은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 한 획씩 혈관을 파고 들어갈 때마다 산벚의 흰 그늘까지 움찔거렸겠지요 한걸음 걸을 때마다 제 근원의 몸부림으로 뜨거웠을 시간들 그때의 다급한 호흡은 어떤 이의 애닮은 기록이었을까요 산벚이 거느린 골짜기들이 일제히 먹빛의 힘으로 일어서는 저녁 경판에 서려있는 푸른 맥박소리 온 산 가득 울려 퍼지는데 먹물보다 진한 핏빛눈물 하얗게 쏟아지네요 오래 전 생의 바깥에 등불을 밝힌 이들은 지금도 구국의 화엄을 새기고 있을까요 봄이면 경판 속의 활자들 환하게 피고지고 짜디짠 소금기 허옇게 일..

2020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당선작(대상/금상/은상/동상) -서문시장 수제빗집 /박명자 외...

서문시장 수제빗집 박명자 빗물 질펀한 시장을 가로질러 노점에 닿는다 양은 솥 가득 수제비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게딱지 손으로 쉼 없이 수제비를 뜯어내는 그녀의 저 재빠른 손놀림, 겨울비 내렸고 생의 절반이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뚝 떨어져 나간 남편과 어린 자식 삼남매와 빚덩이만 밀가루 반죽처럼 게딱지 손 끝에 매달려 있다 팔자라 말하기엔 아직 잘라버리지 못한 것들 손끝에서 댕강댕강 양은솥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 살아가는 삶, 밀가루 반죽은 ‘뚝뚝’ 그녀을 잘라 먹는다 숨을 쉬는 동안 끝나지 않는 눈물을 밀랍하는 일 찜통에 담아두었던 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들고서 밀려 나온 생의 한 가운데 모든 신경을 손 끝에 모아 쪼가리 쪼가리 양은솥 안으로 던져 넣는 수천개의 개딱지 2021..

첫사랑 /최미영 =제27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첫사랑 최미영 이슬이 데려온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내일 또 쏟아져 내릴 빛이건만 오늘은 폭설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풀은 호수다 작년까지의 눈가 잔주름은 눈치 없이 양반다리를 틀고 앉았고 오늘따라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다 반 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을 덮지 못해도 손만 잡고 보냈던 그 날밤 추억으로 양 볼이 자줏빛 국화꽃이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 ―

폐교 /김규학

폐교 김규학 한때, 천 명도 넘던 전교생들 사라지고 그 많던 선생님들 뿔뿔이 흩어지고 궂은일 도맡아 하던 순이 아버지도 가버렸다. 모두 다 떠나버려 적막하고 스산한데 집 나간 아들 기다리는 어머니 심정으로 검버섯 창궐한 학교만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 나팔꽃이 휘청대며 국기 봉을 부여잡고 그늘만 넓혀가던 플라타너스 나무도 밤사이 떠나버릴까 까치둥지가 짓누른다. 좀이 쑤신 학교도 툭툭 털고 일어나 하루빨리 이 산골을 벗어나고 싶겠지만 날마다 담쟁이덩굴이 친친 주저앉힌다. [202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