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감상해 보자 1117

흙수저 /전연희

흙수저 전연희 언덕을 돌아들면 낮은 담장 학교였다 잔디 속 삘기 찾고 솔 순도 맛보는 길 진달래 환한 꽃무리 맨 가슴에 번졌다 보리밭 깜부기도 둔덕에 냉이꽃도 개울가 미루나무 그 환한 반짝임도 조약돌 자잘한 노래 종달새와 벗하던 싱싱한 풀밭 같다 아직 나를 이르는 말 흙수저 맨손으로 들 품에서 자란 덕분 그 풀꽃 내게서 자라 그 향기 잊지 않거니 ―『시와소금』(2023, 봄호)

자매들 /이우걸

자매들 이우걸 쟁반에 담긴 소란이 몇 차례나 들락거려도 거실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모른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강물은 하염없다 막내가 장난삼아 돌팔매를 던지면 언니들도 덩달아 돌팔매를 던져서 파문은 웃음이 되고 또 때로는 울음이 되고 얘기가 잦아들 무렵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추억들을 다시 불러내지만 새벽이 닿을 때쯤엔 엉킨 채 잠이 든다 ―시조집『이명』(천년의시작, 2023)

오프런 /김영철

오픈런 김영철 주머니에 손을 넣은 기다림은 하나도 없다 포켓몬 빵을 그리는 뱀보다 훨씬 긴 시간 책이나 팔짱을 낄 때 '뮤'가 오지 않을까 꿈마저 곤히 잠든 기억 저편 창고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스스 눈 뜬 아이 선명한 에움길 따라 먼지를 내며 온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청춘은 백발 되어 마냥 좋은 눈빛으로 깡충깡충 뜀을 뛰는 똑 닮은 토끼를 위한 초록 마당을 펼친다 ㅡ 『시와소금』(2022, 가을호)

내가 강물이었을 때/이토록

내가 강물이었을 때 ​ 이토록 ​ ​ 먼 산을 불러놓고 나는 그때 침묵했다 ​ 품 안에 너를 안고 울고 나면 다시 먼 산 ​ 숨결에 손이 스쳤던 그것도 꿈같았다 ​ 옛날의 일들이란 몸 안에서 출렁인다 ​ 이제 다시 먼 산을 우레처럼 갈 것이다 ​ 네 뼈를 만져보려고 생가슴을 찢었듯 ​ ​ ​ ㅡ웹진『공정한시인의사회』(2023, 2월호)

강, 그 어디쯤 /우은숙

강, 그 어디쯤 우은숙 기나긴 팔을 뻗어 초승달을 깨운 그녀 옆구리에 바람을 방언처럼 쏟아내고 부푸는 달빛 어깨에 꽃씨 하나 심어둔다 흐름의 머리맡에 푸른 안부 묻던 그녀 몸과 몸 포개놓고 눈부신 떨림으로 또 다른 생명을 키운다 젖줄을 부풀린다 발등 부은 경계에서 바다에 들기까지 그리움을 퍼다가 금강에 쏟고 나면 발꿈치 환해지는 빛 그녀 닮은 찔레 하나 ―『시조시학』(2022, 겨울호)

철벽녀* /김매희

철벽녀* 김매희 들리는 헛소문에 얼굴에 지는 그늘 선불 맞아 데인 상처 다독여 여미는데 뒤통수 운운하면서 덤터기를 씌우네 끊임없는 혀의 말이 벼락 치듯 맞부딪쳐 솟구치고 나뒹굴며 세상살이 간을 본다 얼마나 더 뒤집혀야 훤한 속내 보일까 믿음을 저버린 채 남발한 수식어들 한때의 감언이설 두드려 덧바르니 보고도 믿기지 않네, 감쪽같은 커버쿠션 * 얼굴 잡티 커버하는 파운데이션 - 《시와문화》 2022.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