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코스모스 /김사인 - 겨울 우포 /김주대

코스모스 김사인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ㅡ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 겨울 우포 김주대 언 살 수면을 찢어 늪은 새들의 비상구飛上口를 만들어 놓았다 출렁이는 상처를 밟고 새들이 힘차게 작별한 뒤에도 늪은 밑바닥까지 울던 새들의 발소리 기억하며 겨우내 상처를 열어 두었다 고향을 힘차게 떠난 우리는 언제 어머니 상처에 돌아갈 수 있을까 ㅡ『시와사람』 (2023, 봄호)

박기섭 -오동꽃을 보며/오동꽃 저녁/오동꽃이 늦봄에 피는 까닭

오동꽃을 보며 박기섭 이승의 더딘 봄을 초록에 멱감으며 오마지 않는 이를 기다려 본 이는 알지 나 예서 오동꽃까지는 나절가웃 길임을 윗녘 윗절 파일등은 하마 다 내렸는데 햇전구 갈아끼워 불 켜든 저 오동꽃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이길 열어났네 하현의 낮달로나 나 여기 떠 있거니 오동꽃 이운 날은 먼데 산 뻐꾸기도 헤식은 숭늉 그릇에 피를 쏟듯 울던 것을 ㅡ시조집『오동꽃을 보며』(황금알, 2020) 오동꽃 저녁 박기섭 너의 무릎을 베고 저무는 봄날이었으면 누른 국수에 날감자를 구워 놓고 아픈 데 아픈 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른한 또 그런 봄날이었으면 너는 그예 나를 낳고 창밖에 남아 부신 뻐꾸기 소리나 듣는 다저녁 숭늉 그릇에 오동꽃이나 보는 ㅡ시조집『오동꽃을 보며』(황금알, 2020) 오동꽃이 늦봄에..

제2회 외솔시조문학상 작품상 수상작 -어깨를 툭 치고 가네 외 2 /박환규

어깨를 툭 치고 가네 박환규 서둘러 봄 떠난 자리 짙어지는 초록물에 살짜기 손이라도 담그고 싶은 저녁 유월은 휘어지도록 가라앉아 길을 낸다 그 길의 허릴 안고 여름 달이 떠 있다 너무 가까워서 무거웠던 내리사랑도 다정도 참 편안하고 홀가분할 때가 있다 이제까지 흘러 보낸 작은 일상들이 버리지 못한 헌 옷 같이 새삼 그리운 날 때마침 헐거웠던 이웃 어깨를 툭 치고 가네 텃밭 맘 한켠 소망 한켠 두둑한 나의 텃밭 상추도 치커리도 이라이랑 토마토도 아내가 웃고 서 있다 오늘 저녁 식탁을 농부의 마음으로 자식농사 지으면서 비바람 막아서며 푸르른 생명 앞에 오늘은 또 다른 나를 본다 잡초까지 품는다 벽난로 참나무 타는 소리 고구마 익는 소리 설레고 고단했던 오늘도 잘 달려왔다 늑대와 개의 시간이면 집에 있어도 집..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잠 안 오는 별 김은자 비 내리는 봄날에는 꾸륵꾸륵 산비둘기 울음을 내며 7시발 비둘기호가 두루말이구름 안으로 날아가고, 남부시장에 실려 나온 고추모 가지모 호박고구마모가 명주실 같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서있다 길눈 쌓이는 발 시린 세월을 청보리처럼 참아온 강물이 오늘도 찬 주먹밥 한 덩이 꾸욱 삼키고 비머리한 몸으로 새로 길 떠나는 춘천시 남면 모진강 강둑, 감자밭에 나온 감자 싹이 비꽃에 놀란 두메노랑나비 등에 초록색 ..

감나무 /이재무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어보는 것이다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93] -------------------------------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

후레자식 -김인욱/오봉옥

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

도종환 -막차/풍경/나무에 기대어/못난 꽃 ―박영근에게

막차 도종환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 희미한 불빛으로 발등을 밝히며 돌아온다 내 안에도 기울어진 등받이에 몸 기댄 채 지친 속도에 몸 맡긴 이와 달아올랐던 얼굴 차창에 식히며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이 하나 내 안에도 눈꺼풀은 한없이 허물어지는데 가끔씩 눈 들어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는 승객 몇이 함께 실려 돌아온다 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바람이 분다 ----------- 풍경 도종환 이름 없는 언덕에 기대어 한 세월 살았네 한 해에 절반쯤은 황량한 풍경과 살았네 꽃은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고 특별할 게 없는 날이 오래 곁에 있었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자벌레 시 모음 -김종구/조성국/이상인/강경호/복효근/엄원태/...외

자벌레 김종구 이게 도대체 몇 자나 되는 거야? 궁금증 많은 자벌레 한 자 한 자 세상을 재본다 제 몸이 한 자인줄 아는 자벌레가 풀잎 끝에서 오랜만에 허리 펴고 저것도 잴 수 있을까? 허공 바라보다 쟀던 자수 잊어버리고 아래로 내려오며 한 자 두자 다시 재고 있다 내 나이가 몇이더라? 깜박 깜박 건망증도 심한 자아 벌레 百을 접은 허리 접었다 폈다 열심히 뱃살을 허공에 튕겨본다 ―시집『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시와사람, 20220) ------------ 자벌레 조성국 이맘때쯤 금당산 떡갈나무 숲길에는 웬 자벌레가 그리도 많은지 몇 발짝 뗄 때마다 어김없이 달라붙곤 했다 눈에 띄지도 않게 투명실낱을 타고 내려와 잣댈 드밀었다 가무잡잡 온몸을 굽혔다 냅다 뻗으며 멧부리지름길이나 기웃거리는 내 꿍꿍이속..

해바라기 -이명숙/조선의

해바라기 이우디 처음 본 순간 울고 싶어서 입술 붉은 장미와 꽃결 보드란 패랭이와 캐모마일 향에 취한, 집시를 꿈꾸는 여름밤의 맨살 깊숙이 파고들어 꽃물 도는 한 마디에 한 목숨 걸고 싶어서 너를 태우고 나를 태우고 중심을 읽는다 빈 칸칸 너를 쓴다 ㅡ시집『수식은 잊어요』(황금알, 2020) -------------------- 해바라기 조선의 산다는 것이 결국 살아남는 것임을 알았을 때 얼굴에서 굳은 표정이 하나씩 없어져도 자구만 달아나는 웃음만은 잡아두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하루에 서너 개씩 시나브로 얼굴에서 표정이 빠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 모습이 핏기없는 무표정이라면 진저리치고 싶을 거에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어요 어느 누가 손 내밀어 주겠습니까 하소연할 곳도 없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웃음만..

호박 시 모음 -나근희/이은/송찬호/김광규/복효근/유순예/유승도/안상학...외

호박죽을 쑤며 나근희 잘했다 썩을 놈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두고 간 늙은 호박 방구석에 틀어박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다가 뒤늦은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야 배를 가른다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어 호박죽을 끓인다 부글부글 잘도 끓는다 엄마 속이 썩어문드러지는 소리 같다 ―시집『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