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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김인욱/오봉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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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령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시집『잘가라 여우』(문학세계사, 2012)     

―계간『다층』(200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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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오봉옥

 

 

울 아덜은 하늘이 내린 자석이어라우

울 어매 날 두고 단 한번도

당신이 낳은 자식이라 하지 않았네

내가 사고 쳐 속 썩일 때에도

회초리 대신 눈물 글썽거리시며

태몽이야길 꺼내곤 했지

글씨, 마당에 비양기 한 대가 떨어졌시야

근디 그 비행기 사다리를 볿고

학 한 마리가 영판 멋드러지게 내려오드라

그게 니다

긍께 넌 하늘이 내려준 자석 아니냐

그런 울 어매 돌아가셨는데

난 참 좋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전화하던

치매 걸린 어매 목소리 듣지 않으니 좋고

이젠 가슴 졸이며 잘 일도 없으니

이보다 더 홀가분 할 순 없네

 

 

 

―계간『시와시학』(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