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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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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 / 별과 불면 - 김은자의 ‘잠 안 오는 별’

 

잠 안 오는 별

김은자

 

비 내리는 봄날에는 꾸륵꾸륵 산비둘기 울음을 내며 7시발 비둘기호가 두루말이구름 안으로 날아가고, 남부시장에 실려 나온 고추모 가지모 호박고구마모가 명주실 같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서있다 길눈 쌓이는 발 시린 세월을 청보리처럼 참아온 강물이 오늘도 찬 주먹밥 한 덩이 꾸욱 삼키고 비머리한 몸으로 새로 길 떠나는 춘천시 남면 모진강 강둑, 감자밭에 나온 감자 싹이 비꽃에 놀란 두메노랑나비 등에 초록색 우산을 기울여 씌워준다

사월이 가면 오월이 오는가, 상봉 사흘 만에 헤어지는 이산가족들 허옇게 바랜 세월 따라 흰 꽃 피는 찔레꽃머리에 금강산여관의 밤하늘에는 잠 안 오는 별이 하나, 다만 아픈 손자욱 꾹꾹 땅에 박아 넣는다
                                    
-『시안』(2002. 여름)

 

<해설>

이은봉 시인과 함께 『올해의 좋은 시』편찬 작업을 하면서 좋은 시로 뽑았던 작품이다. 제1연에서 시인은 비 내리는 봄날 풍경을 그리고 있다. 7시발 비둘기호가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내며 떠나가고, 남부시장에는 모종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서있다”. 이처럼 예사롭던 봄 풍경이 뒤로 갈수록 예사롭지 않게 변한다. “발 시린 세월”이라는 상큼한 표현과 봄비에 놀란 두메노랑나비의 등에 초록색 우산을 기울여 씌워주는 감자 싹에 대한 절묘한 묘사는 사실 뒤에 이어지는 연을 위한 예비다. 

봄이 오면 얼었던 강물도 풀리고 산천의 초목은 다시금 피어나건만 이산가족은 상봉 사흘 만에 헤어진다. 시인이 보건대 금강산여관 위로 떠오른 별은 이별이 슬퍼 잠 못 이루는 별이다. 그 별이 자국 난 아픈 손을 다시 땅에 박아 넣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한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이산가족은 밤하늘의 별이나 달조차도 예사롭게 보지 않나 보다. 잠 안 오는 그 별을 남녘의 이 사람과 북녘의 그 사람이 함께 보고 있을 테니까. 분단의 세월이 어언 70년이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