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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꽃을 보며
박기섭
이승의 더딘 봄을 초록에 멱감으며
오마지 않는 이를 기다려 본 이는 알지
나 예서 오동꽃까지는 나절가웃 길임을
윗녘 윗절 파일등은 하마 다 내렸는데
햇전구 갈아끼워 불 켜든 저 오동꽃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이길 열어났네
하현의 낮달로나 나 여기 떠 있거니
오동꽃 이운 날은 먼데 산 뻐꾸기도
헤식은 숭늉 그릇에 피를 쏟듯 울던 것을
<2014 제34회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작>
ㅡ시조집『오동꽃을 보며』(황금알, 2020)
오동꽃 저녁
박기섭
너의 무릎을 베고
저무는 봄날이었으면
누른 국수에
날감자를 구워 놓고
아픈 데 아픈 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른한
또 그런 봄날이었으면
너는 그예 나를 낳고
창밖에 남아 부신
뻐꾸기 소리나 듣는
다저녁 숭늉 그릇에
오동꽃이나 보는
ㅡ시조집『오동꽃을 보며』(황금알, 2020)
오동꽃이 늦봄에 피는 까닭
박기섭
그 눈물 글썽이며 초록은 윗절 가고
딱새랑 직박구리 곤줄박이 건너오는
개울은 개울을 밀었다 당기고는 하는데요
저 하늘 갠 까닭을 내가 다는 모르지만
찔레랑 말발도리 대죽꽃 피는 날은
산빛이 산빛을 쪼고는 그러는 줄 아는데요
함부로는 오지 않는 봄 뒤쪽 보랏빛이
못자리 모 포기들 모짝모짝 뽑다 말고
오동꽃 필 적만 기다려 등을 달고 있는데요
ㅡ시집『서녘의, 책』(발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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