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이는 여자 박화남 가을은 익어가는데 그녀는 텅 비었다 호박죽 끓이는 일이 뜨거운 하루라고 그 자리 오래 머물며 입맛을 저어준다 눈 앞이 막막할 때 그리운 건 정이다 푹푹 빠진 맨 삶이 스스로를 달래며 씨를 뺀 둥근 말과 표정 데워서 담아낸다 바깥이 단단해도 속은 더 풀어진다 손끝의 농도는 퍼낼수록 짙어져 더 달게 살아내려고 한 계절을 허문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2022년 5월 28일 오후 7시 51분 멍들다 박화남 평생을 납땜으로 대낮을 때우셨던 아버지의 온몸이 밤마다 흘러내린다 불똥이 나를 뚫고서 타는 줄도 모르고 바지마다 검은 자국 불빛의 뒷면이다 멍들은 그 시간들 얼마나 태웠는지 파편을 받아낸 자리 별빛으로 박혔을까 아버지의 별들은 황금빛 구멍이다 안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