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나무 마경덕 늘 고만고만한 쥐똥나무 허리쯤 닿는 제 키를 원래 그렇다고 믿는 눈치다 해마다 전지가위에 길들여지더니 공원 울타리 노릇이나 하면서 이대로 늙어갈 모양이다 꽃 같지도 않다고,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주눅이 든 쥐똥나무는 소심형 지난겨울 쥐똥처럼 생긴 열매를 들고 서서 이걸 어디에 숨기나 쩔쩔매는 것을 보았다 쥐똥냄새 나는 이름이 싫다고 말도 못하는 쥐똥나무 이렇게 고운 향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 번도 각주를 달지 않는 쥐똥나무 겉모습에 착한 세상 향기는 보지 않고 쥐똥만 보는 시대, 쥐똥나무야 미안하다 공원에 나갔다가 반성문 한 장 쓰고 돌아왔다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2021년 1월 7일 13시 3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