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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유전자를 보았다
마경덕
산 밑을 지나가는데
일제히 나무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에게 날개만 달아주
던 나무들이 재재거리며 새떼처럼 울었다.
누가 움켜쥐었다가 놓쳤는지,
이파리들 죄 구겨져 잠시 치솟더니 고꾸라졌다. 위험한
비행이었다. 먼발치에서 올려다본 산의 어깨가 수척했다.
바람이 쓸어내린 허공도 우묵했다. 마음을 버린 가을의
손바닥이 버석버석 마르고 있었다.
데구루루 화장실 바닥을 구르는 두루마리, 둥굴게 말려
벽에 걸렸던 숲의 기억이 쏟아졌다. 발목과 바꾼 날개를
달고 화장지는 멀리 달아난다. 나무는 뿌리를 버리는 순
간, 어디든 갈 수 있다.
대패와 톱으로 나무를 다듬던 아버지, 바람부는 날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ㅡ『문예감성』(2011. 봄.여름)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2021년 1월 7일 오후 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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